저는 10년 넘는 시간동안 중소기업에서 보안 업무를 맡아온 보안 담당자입니다. 중소, 중견, 대기업 계열사, 자회사 참 많은 기업을 경험했는데요 최근 '우리나라 보안이 체크리스트 점검 방식에 치중되어 있다'는 기사를 보았는데, 너무나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오늘은 솔직한 제 경험을 바탕으로, 왜 많은 보안 담당자들이 '체크리스트'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지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1. 보안은 '비용'인가, '투자'인가?


보안 업계에서는 늘 "보안은 투자의 개념으로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현실의 경영진들은 보안을 여전히 '비용'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고가 났을 때 더 큰 손해를 막는 것'이라는 논리도, "아직 사고 난 적 없는데? 그동안 쓴 돈은 다 낭비였던 거 아니야?"라는 한마디에 힘을 잃습니다.

이런 인식은 자연스럽게 인력 충원이나 솔루션 도입에 인색한 결과로 이어집니다. 최소한의 인원으로, 최소한의 예산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진정한 보안 강화'는 늘 후순위로 밀려납니다.

 

 

 


2. 고립된 섬, 보안팀

보안 담당자들은 내부 직원들에게서도 이중적인 시선을 받습니다.
"보안팀 때문에 일 못하겠다"는 불만은 일상다반사입니다.
같은 동료들을 못 믿는다는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작 사고가 발생하면 모든 책임은 보안팀에게 돌아옵니다.
평소에는 협조에 소극적이다가도, 문제가 터지면 '보안팀은 도대체 뭘 한 거냐'는 비난을 듣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3. 규제와 현실 사이의 간극

규제 기관은 모든 기업에 일원화된 잣대를 들이밉니다.
심지어 클라우드 환경에서 "사설 IP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며 ISMS 인증 심사에서 지적하는 심사원을 이해시키느라 반나절을 보낸 적도 있습니다.
기술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좁은 지식 안에서 획일적인 규제를 적용하려는 시도는 현장에서 큰 어려움을 낳습니다.

 

 

 


4. 체크리스트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

이런 상황에서 모든 규제는 '체크리스트'와 '증적' 제출을 요구합니다. 
법에서 요구하는 증적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 과태료는 물론, 언론 기사로 인해 회사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따라서 보안 담당자의 최우선 과제는 더 이상 '회사의 보안 수준 향상'이 아닙니다.
'규제기관의 요구사항을 잘 맞추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1~2명의 보안 담당자가 대부분인 중소기업에서는 법적 증적을 만드느라 한 달, 일 년이 훌쩍 지나갑니다.
정말 필요한 보안 활동은 야근을 감수해야만 간신히 해낼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것은 기업의 '보안 불감증'과 '타이트한 규제'가 만들어낸 안타까운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타이트한 법규는 있고, 인력과 시간은 부족하니, 결국 '법 조항을 체크리스트로 만들어서 그것만이라도 지키자'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치며

저는 이 문제가 해결되려면, 경영진에 대한 정기적인 보안 교육이 의무화되고, 기업의 규모나 특성에 맞는 유연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보안 담당자가 단순히 체크리스트를 채우는 사람이 아닌, 기업의 핵심 경쟁력을 지키는 '보안 전문가'로 존중받는 날이 오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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